▲ 실전한국어 표지
"이야기란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모아 말이 되게 만드는 일이다. 인생이란 말이 되던 것들도 말이 안 되게 돌변하는 곳이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인물을 만들고 사건을 일으킨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라오고, 흩어진 사건들도 마지막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런데 자기 인생은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
문지혁의 장편소설 '실전 한국어'는 이야기를 만드는 법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자기 삶은 뜻대로 끌고 갈 수 없는 소설가의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2020년 '초급 한국어', 2023년 '중급 한국어'에 이어지는 '한국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독자들이 기다렸던 다음 단계는 '고급 한국어'였지만 작가는 '실전'을 택했다.
문학을 배우는 일이 삶을 배우는 일이라면 인생에는 초급과 중급 다음에 도달하는 '고급'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실전을 치른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도 작가와 같은 문지혁이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소설을 쓰고 아이를 키운다. 두 개의 석사 학위와 영어 강의 경력, 여러 권의 책까지 이력만 보면 제법 화려하다.
그러나 현실은 좀처럼 이력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K대학 전임교수 임용에 다시 도전하지만 탈락한다. "강사를 오래한다고 그 대학에서 전임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바다이야기5만
."
그에게 새로 찾아온 자리는 대학 강단이 아니라 구청의 '나도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 뽀개기' 수업이다.
그곳에서 지혁은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다.
영웅에게는 여정이 있고, 이야기에는 플롯이 있다. 인물은 시련을 겪고 변화를 거쳐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에는 시작과 과정과 끝을 연결하는 질서가 있다.
그런데 한 수강생이 묻는다.
"이야기로 만들면 다 말이 되잖아? 근데 그게 맞아요?"
이어지는 질문 앞에서는 이야기의 공식도 힘을 잃는다.
"이 세상엔 말 안 되는 얘기들투성이 아뇨?"
이 질문은 강사 문지혁에게 향하지만 동시에 소설가 문지혁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문지혁에게 돌아온다.
삶에는 이야기처럼 친절한 복선도 인과관계도 없다.
그 자신이 일찌감치 깨달았듯 "인생이라는 게 꼭 1 다음에 2가, 2 다음에 3이 오지 않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1에서 100으로 뛰고 누군가는 300에서 마이너스 500으로 추락한다.
그 불규칙한 삶을 소설은 딸 은채와 하는 끝말잇기에 포개놓는다.
다람쥐에서 쥐구멍으로, 쥐구멍에서 멍게로 넘어간다. 상대방이 무슨 단어를 내놓을지 미리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의 규칙은 있다.
슬롯머신무료
앞말의 끝이 다음 말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지혁의 삶도 그렇다. 임용에서 떨어져도 다음 일이 찾아온다. 구청의 강의를 맡고, 낯선 노트를 받아들이고,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
무슨 말이 올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그 말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있다.
소설 속 '문지혁'과 소설 밖 작가 문지혁이 닮았다는 .도 작품의 묘미다.
이름뿐 아니라 소설가이자 강사이며 아이를 키우는 삶의 상당 부분이 겹친다. 하지만 작가는 둘을 동일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비슷하게 흘러가는 두 세계는 나란히 달리면서 조금씩 어긋난다.
그 틈에서 자조와 유머가 생겨난다.
대학 임용의 실패도, 소설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육아의 고단함도 비극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웃음의 재료로 바꾸고 다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실전 한국어'가 가르치는 것은 결국 한국어가 아니다.
이야기로 설명되지 않는 삶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가깝다.
소설에는 끝이 있지만 삶에는 다음 단어가 기다리고 있다.
끝말잇기에서 중요한 것이 대단한 단어를 내놓는 일이 아니라 앞사람이 건넨 마지막 글자를 받아 다시 이어가는 일이라면, 삶 역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다음 말을 이어가는 일인지 모른다.
"수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으며, 어떤 단어는 되찾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초급'과 '중급'을 지나 도착한 곳은 '고급'이 아니다.
실전이다.
ong>
백경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