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내 금융 비리 의혹 수사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 플라비우 디누(왼쪽부터), 앙드레 멘동사,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 연방 대법관이 지난 2일 대법원 회의에 참석했다. 브라질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 내부에 갈등이 생기며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음 달 4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브라질에서 초유의 ‘사법부 내전’이 。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 비리 의혹 수사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상극인 대법관들이 저격전을 벌이고 서로의 결정을 뒤집으며 정면 충돌하자, 급기야 대법원장이 양쪽 결정의 효력을 모두 정지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좌우 진영이 팽팽하게 맞붙은 대선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에서 법원이 또 하나의 ‘정치 전장(戰場)’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하루 만에 뒤집힌 경찰청장 직무 정지
이 같은 사법 막장극의 뿌리에는 대법관들이 얽힌 대형 금융 비리 수사가 있다. 브라질에선 특정 조건 하에 대법관이 재판 뿐 아니라 수사·기소 과정을 지휘할 수 있는데, 이달 초 앙드레 멘동사 대법관은 청산된 마르테스 은행을 둘러싼 수사를 지휘하면서 이 은행 전 회장이 알레샨드리 지모라이스 대법관에게 보낸 메시지가 포함된 경찰 수사 자료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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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모라이스와 은행 간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멘동사는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표적 보수 법관이다. 지모라이스는 중도 성향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에 의해 2017년 임명됐지만, 보우소나루 대선불복 사건 수사·재판을 주도하면서 우파 진영의 최대 공적(公敵)으로 찍혀 있는 인물이다. 지모라이스는 오히려 멘동사가 권한을 남용했다며 그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등 역공에 나섰다.
이에 멘동사는 지난 8일 지모라이스의 우군으로 분류되는 경찰청장과 정보국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연방경찰 관계자들이 자신을 비롯한 대법관과 주요 공직자들을 부당하게 감시하기 위한 정보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의혹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자 불과 하루 뒤 역시 지모라이스의 우군이자 진보 성향인 플라비우 디누 대법관이 참전해 멘동사의 결정을 뒤엎었다. 디누는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이 2024년 임명한 인물이다. 그는 경찰 수뇌부를 복직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직무 정지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고 진행 중인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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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대법관들끼리 대립하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에드송 파킨 대법원장은 9일 두 대법관의 결정 효력을 모두 정지시켰다. 개별 대법관의 권한이 막강한 브라질에서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의 결정에 직접 개입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법원 내전이 대선판까지 흔든다
브라질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룰라는 과거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580일간 수감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1년 당시 재판을 맡은 법원에 관할권이 없었다고 판단해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고, 이에 따라 룰라는 다시 대선에 출마할 자격을 회복했다. 반대로 보우소나루는 지난해 쿠데타 모의 혐의 등으로 27년이 넘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각각 법적 근거와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대법원의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판단이 바뀐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브라질 대법원은 총 11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며, 공석이 생기면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고 상원 재적 의원 과반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대법관은 별도의 임기 없이 75세까지 재직할 수 있다. 어느 대통령이 누구를 임명했느냐가 대법원의 이념적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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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브라질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애비뉴에서 열린 우파 자유당 대선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 지지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그의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대형 입간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플라비우는 다음 달 4일 대선을 앞두고 좌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문제는 이번 사법부 내전이 대선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폭발했다는 。이다. 우파 진영은 이번 사태를 대대적인 반격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장남이자 자유당 대선 후보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은 사법부가 좌편향돼 있고 내부 비리 의혹까지 드러났다며 반(反)룰라 정서를 이용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실제로 한때 룰라의 우세가 예상됐던 대선 판세는 요동치고 있다. 지난 8일 공개된 BTG팍투알·넥서스 조사에서 결선투표를 가정할 경우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46%, 룰라가 45%를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정치권의 경쟁과 불안정이 극심해지면서 그 여파가 사법부 등 다른 권력 기관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현 정권에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이런 혼란을 초래했다는 인식이 퍼져 룰라에게 감。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은 향후 정치적 분쟁을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기관인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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