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의 스틸컷.
21세기 영화사에 가장 굵직한 궤적을 남긴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2009)일 것이다. 개봉 당시 국내에서 1천만 관객을 돌파함은 물론, 현재까지 전 세계 흥행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바타’는 현대 블록버스터의 개념을 재정의했다. ‘아바타’ 신드롬의 핵심 동력은 독보적인 비주얼리즘에 있었다.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한 나비족의 사실적인 묘사와 3D 입체 기술의 전면적 도입은 시각적 쾌락의 극단을 선사하며 시네마틱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영화 ‘호프’의 스틸컷.
이처럼 기술적 혁신과 대중적 재미의 조화라는 맥락에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장르적 특성상 자연스럽게 ‘아바타’의 기록과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호불호 속에서 올 한 해 영화계 최고의 논란작으로 부상한 ‘호프’는 영화 자체의 성패를 넘어선 특이한 현상을 낳았다. 이동진 평론가가 별。 5。 만。 중 4。을 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고 해명문까지 게재해야 했던 상황이 생기며 ‘평가에 대한 평가’의 용인 기준이 어디까지 도달했는가를 묻는 비평적 화두를 던진 것이다.
영화 ‘호프’의 스틸컷.
◆클리셰를 비웃는 아포칼립스
‘호프’를 이해하려면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데뷔작 ‘추격자’부터 ‘황해’, ‘곡성’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이야기와 집요한 연출로 매번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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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호프’는 기획 단계부터 세간의 과열된 기대를 모았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수준인 500억 원 이상의 제작비 투입,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국내 라인업에 더해 테일러 러셀, 마이클 패스벤더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합류 소식이 열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15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지며 나 감독이 새로이 도달할 미학적 경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베일을 벗은 ‘호프’는 캐스팅과 포스터를 둘러싼 무수한 추측을 깨뜨리고 외계 존재를 소재로 한 SF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1980년대 호포항이라는 가상의 고립된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신화적 괴수도 야생 동물도 아닌 거대한 외계 생명체들이 마을을 침습하고, 이에 맞서 비밀을 파헤치는 인물들의 사투를 담아냈다.
영화 ‘호프’의 스틸컷.
앞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등 일부 한국 대작에서 드러났던 어색한 CG의 한계를 떠올리며 우려 섞인 시선으로 접근한 관객들에게 ‘호프’가 보여준 크리처 디자인과 연출은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을 선사했다. 대중 매체가 관습적으로 재현해 온 ‘초록색 피부와 커다란 눈을 가진 외계인’의 전형을 탈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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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부터 요정의 아우라를 지닌 개체,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형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존재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인류가 느끼는 기괴함과 무력감을 비주얼적으로 시각화했다.
특히 압권은 괴수 형태와 이족보행의 인간 형상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외계 존재 ‘마베이요’의 변신 장면이다. 정체불명의 두 외계인이 실은 단 하나의 개체였다는 반전과 함께 생물학적 법칙을 비웃듯 기괴하게 이완되고 재구성되는 변신 연출은 탄성을 자아낸다.
이어 시각적 충격을 안기는 또 다른 국면은 조인성이 연기한 ‘성기’의 사고 시퀀스다. 집요하게 자신들을 추격하던 마베이요를 범석, 성애와 함께 사투 끝에 물리친 직후 예측할 수 없었던 차창 밖 접촉 사고로 사망을 예상케하는 연출은 전형적인 플롯을 산산조각 내는 강력한 반전 장치로 작동한다. 다만 쿠키 영상을 통해 해당 캐릭터의 생존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허무맹랑한 비극이 부여할 수 있었던 파괴력과 서스펜스의 밀도가 다소 반감되었다는 .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호프’의 스틸컷.
◆절망 속 피어난 시네마틱 ‘호프’
150분에 달하는 장편 영화에서 몰입감의 유지 여부는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런 관.에서 ‘호프’는 다소 엇갈린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필자의 경우 시각과 감각을 극대화하는 4DX 관람을 통해 완성도 높은 오락적 쾌감을 경험했으나 정적인 2D 상영관에서의 관람이었다면 중반부의 완급 조절에서 지루함을 느꼈을 여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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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사의 도입부가 그러하다. 외계 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을 축적하기 위해 초반 30여 분 동안 실체를 직접 드러내지 않은 채 미지의 존재가 남긴 참혹한 흔적과 파괴된 마을의 풍경만을 지루하게 조명한다. 이러한 장황한 빌드업이 과연 필수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최초로 등장하는 ‘바미기르’ 외에도 세 명의 외계 존재가 추가로 등장하지만 서사의 비중이 바미기르에게 과도하게 편중된 탓에 후반부 존재들의 매력이 충분히 만개하지 못한 채 소모된 。 역시 구조적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영화 ‘호프’의 스틸컷.
‘호프’를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의 진원지는 단연 결말부다. 후속작을 필연적으로 암시하는 ‘마베이요’와 ‘조르’의 의미심장한 대화로 극이 마무리됨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홍진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속편 제작에 대한 명확한 확답을 보류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프’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가 내놓았던 외계인 및 SF 소재 작품들 가운데 단연 가장 독보적이고 미학적으로 우수한 성취를 거둔 작품이라 단언할 수밖에 없다. 비록 미완의 서사와 과감한 선택이 가져온 불협화음이 존재할지라도 나홍진 감독이 구축한 이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아포칼립스는 한국 상업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적 국경을 한 단계 넓혀놓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과 갈망이 얽혀 만든 거대한 비극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다음 스크린을 끊임없이 기웃거리게 만드는 영화적 ‘호프(HOPE)’ 그 자체다.
물학적 법칙을 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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