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태양왕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거울의 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래픽적인 정교한 구성과 방대한 규모의 프랑스식 정원에 압도된다. 그러나 하루 종일 이어지는 관광객 행렬 속에서 그 화려함을 천천히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저녁이 되어 궁전의 문이 닫히면 낮 동안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북적이던 화려한 궁전은 고요한 정적에 휩싸이고, 마치 왕정의 영혼들을 지키려는 듯 굳게 닫혀 있다. 밤의 베르사유 궁전은 극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베르사유 궁전 폐관 시간 후 굳게 닫힌 정문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조심스럽게 열린다. 정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따라 중정을 가로질러 오른쪽 별관 끝으로 향하면, 고요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긴 복도가 이어진다. 그 복도를 지나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바로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공연장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Opéra Royal de Versailles)'이다.
'왕립 오페라'라는 이름 때문에 거대한 극장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아담하고 아늑하다. 객석은 타원형으로 무대를 감싸듯 하고 코린트식 기둥, 청록색 인조 대리석과 금빛 장식은 은은하게 빛난다. 아폴론과 뮤즈들은 음악을 축복하듯 천장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웅장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포근하다. 베르사유 궁전 큐레이터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이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 / 사진. © Yuhao PAN, 출처. Château de Versailles Spectacles
프랑스 오페라의 창시자
루이 14세에게 총애받던 음악가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프랑스로 귀화했다
손오공주소
. 그는 궁정 음악가로 발탁되면서 프랑스 음악사의 중심에 서게 되고 프랑스 궁정 음악의 기준을 세웠다.
특히 극작가 몰리에르(Molière)와 함께 선보인 코메디 발레(Comédie-ballet)는 연극과 무용, 음악을 하나로 결합한 새로운 공연 형식이었다. 이후 륄리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 프랑스 오페라의 출발。이 되는 트라제디 앙 뮈지크(Tragédie en musique)를 완성했다.
그는 공연 도중 사고로 지휘봉에 발을 찔려 그 상처가 악화되면서 결국 생을 마감했다. 자신이 창조한 오페라처럼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오늘날에도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프랑스 오페라 창시자 장바티스트 륄리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00년 만에 이루어진 꿈
흥미롭게도 이 아름다운 극장은 루이 14세가 완성한 건축물이 아니다. 사실 왕립 오페라는 태양왕이 평생 이루지 못했던 꿈이었다. 그는 몰리에르와 륄리의 작품을 사랑했고, 화려한 대규모 공연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나고, 말년에는 종교적 신념이 깊어지면서 극장보다는 왕실 예배당(Chapelle Royale)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루이 14세의 오랜 꿈은 거의 100년이 흐른 뒤인, 루이 15세 때 이루어졌다. 왕실 수석 건축가 앙주자크 가브리엘(Ange-Jacques Gabriel)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의 극장들을 연구한 끝에 전통적인 말굽형 객석 대신 어느 좌석에서나 배우의 표정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작은 소리까지 고르게 전달될 수 있는 타원형에 가까운 구조를 선택했다. 오늘날 공연장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넓은 시야와 음향의 원칙을 이미 18세기에 생각한 셈이다
오리지널황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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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770년 마리 앙투아네트와 훗날 루이 16세가 되는 왕세자 루이 오귀스트의 결혼식 연회를 위해 단 2년 만에 지어져야 했다. 당시 국가 재정은 이미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된 재료는 목재이다.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을 통해 석재보다 훨씬 저렴한 목재에 채색을 입혀 대리석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왕립 오페라를 세계 최고의 음향을 가진 극장으로 만들었다. 목재로 된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현악기처럼 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종종 "마치 거대한 바이올린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건축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는 실제로 자주 사용되지 못했다. 공연 한 번을 올릴 때마다 약 3천 개의 촛불을 밝혀야 했고,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20년 동안 이 극장에서 열린 공연은 겨우 37회에 불과했다.
다시 살아난 극장
왕실을 위해 지어졌던 극장은 혁명 이후에는 정치 집회와 국빈을 맞이하는 연회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의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바뀌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극장은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외젠 라미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에서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주최한 나폴레옹 3세의 만찬회>(1855) /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왕립 오페라의 복원이 시작된다. 2007년부터 2년에 걸친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쳐 2009년, 마침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복원의 목적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이곳을 다시 살아 있는 극장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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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매년 100회가 넘는 공연이 열리고 륄리와, 라모, 모차르트, 헨델, 베르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세계 최고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객석에는 이제 촛불 대신 전기 조명이 켜지지만 250년 전과 거의 같은 공간에서, 거의 같은 울림으로 음악이 연주된다는 사실에 놀란다.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 / 사진. © Pascal Le Mée, 출처. Château de Versailles Spectacles
왕실 예배당
오페라와 바로크 음악 연주회는 왕립 오페라와 같은 건물에 있는 왕실 예배당에서 나누어 열린다. 루이 14세의 마지막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1710년에 완성된 이 왕실 예배당은 왕권과 신앙이 만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세자 루이 오귀스트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높은 창과 웅장한 천장 그리고 고전주의 양식의 기둥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는 왕립 오페라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경건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년 전, 왕실 예배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 연주회를 본 적이 있다. 공연은 촛불을 든 어린이 성가대가 예배당 밖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들어오며 성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고요한 예배당 안에 울려 퍼지는 맑고 순수한 목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의 노래처럼 신비롭고 경건하게 울려 퍼졌다.
왕립 오페라와 왕실 예배당은 단순한 역사적 건축물이 아니라 지금도 음악으로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이 소중한 공간을 오래도록 지키기 위해 지난 10여년간 ADOR(Amis de l'Opéra Royal, 왕립 오페라의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후원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지원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다면 박물관이 된 화려한 궁전을 둘러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왕립 오페라나 왕실 예배당에서 열리는 한밤의 바로크 음악 연주회와 오페라를 감상해 보길 권한다.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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