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여름 텃밭 농사는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웃자란 상추를 뽑고, 방울토마토 덩굴을 걷어냈다. 상추는 식구들이 먹기에 충분하게 얻었다. 방울토마토 수확은 예년에 비해 형편없었다.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내 잘못도 크겠지만, 올해 여름은 너무 가물었다. 채마 등속을 뽑고 걷어내서 생긴 텃밭의 빈자리를 바라보니 아쉬움이 컸다. 쪄서 무쳐 먹을 가지만 겨우 몇 개 달려 있다. 마지막 참외도 땄다. 텃밭에서 일을 한 후에 팔에 풀독이 올라 여러 날 고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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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외 따서 건네니 호박잎 돌아와
이웃과 수확 나누는 경험 각별해
즐거움이 무성하게 자라는 텃밭
」
옆집 할머니께서 무화과밭에 나와 무화과를 따시는 모습은 올해에도 아침과 저녁에 볼 수 있어 반갑기만 하다. 할머니의 무화과 농사 작황도 올해는 풍성하지가 않다. 무더위가 심했고, 비 오는 날이 적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열매를 따시는 할머니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무언가 마음속에 기뻐할 만한 기대가 가득 차서 자꾸 얼굴에 미소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것만 같다. 할머니는 올해에도 내게 무화과를 건네주셨다.
여름이 지나가는지 새벽엔 선선한 기운이 있다. 아직은 가을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저만치 떨어져 있지만 계절의 바뀜이 마냥 미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 참외를 포함해서 내 집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을 이웃은 물론 지인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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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더니 한 이웃은 호박잎을 따서 내 집에 갖다 주었다. 또 한 이웃은 양하를 따서 갖다 주었다. 양하는 지역에 따라 양애라고 발음하기도 하는데, 장아찌로 먹기도 하고 날 것이나 데친 것을 무쳐 먹기도 한다. 향이 있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다.
시골에 살면서 재배한 작물의 수확을 나누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물론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어렸을 적엔 흔하게 보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렇게 이웃끼리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물품의 교환인 셈인데, 다만 물품을 서로 주고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성심껏 나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주고받음은 일 년 내내 이뤄질 뿐만 아니라 작물의 수확 외에 다른 것까지를 나누기도 한다. 가령 동네에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시는 분이 있다. 그분이 얼마 전엔 직접 그린 유화를 액자에 넣어 내게 주셨다. 제주의 비양도를 그린, 근사한 그림이었다.
어쩌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물품을 서로 주고받는 일을 유독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임 때마다 작은 선물을 주는 일을 예사로운 일로 여기고 있으니 그렇다. 제주에 이사를 와서 선물로 받은 물품 가운데 특별해서 더더욱 잊을 수 없는 것으로는 보리 개역과 쉰다리를 들 수 있을 듯하다. 보리 개역은 제주어인데 미숫가루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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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에 비벼 먹거나 차가운 물에 타서 마신다. 쉰다리는 발효 음료이다. 보리밥이나 쌀밥에 물과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 마시는 음료이다. 많이 마시면 살짝 술기운이 몸에 돈다. 어쨌든 예전부터 먹어온 서민의 음식이라고 하겠다. 그 맛이 아직 기억의 혀끝에 남아 있다.
한국의 소설과 시를 번역하는, 한 외국 번역가가 내 시집을 번역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러 제주에 찾아와서 최근에 만났다. 그이는 제주에서 이웃 사이에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이 참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내가 쓴 산문에서 읽었다며 푸근하게 웃었다. 요즘도 이웃끼리 그렇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여전하다고 대답했다. 제주의 전통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 그이가 수줍어하며 내게 선물을 내밀었다.
그이가 살고 있는 나라인 체코에서 자라난 야생화로 차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겉봉지에 꽃차의 상품명이 하나의 문장으로 적혀 있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즐거움이 자란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제품에 붙인 상품명이 너무 멋지다고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나도 내 마음이 담긴 내 나름의 선물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물품의 교환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물품의 값어치를 낱낱이 매길 순 없겠지만, 아마도 가치를 따지자면 세상의 어떤 물품보다도 값진 것일 테다. 그 물품을 주고받는 일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에 큰 즐거움이 야생화처럼 자랄 것이므로.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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