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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간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방송언어 연구에 매진해 온 강성곤 씨. 그가 그간의 경험이 축적된 저서와 취재노트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현재 그는 대학 외래교수이자 대중 강연자로 제2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변영욱 기자 빛바랜 취재 노트 7권과 저서 8권. 강성곤 씨(64)는 탁자 위에 37년이라는 시간이 담긴 그의 ‘보물들’을 올려놨다. KBS 아나운서로 일하며 방송언어 연구에 전념해 온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강 씨는 4년 전인 2022년, 만 60세로 KBS에서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외래교수로 스피치 강의를 하고 신문에 칼럼을 쓰며 오페라에 관한 대중 강연도 하고 있다. 그의 노년은 안정되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3년간의 소득 ‘보릿고개’가 있었다. ● 화려한 이력 뒤 막막함 “퇴직 전에 제일 잘못한 게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받아 쓴 것이었어요. (회사에서) 중간정산 공고가 뜰 때마다 별생각 없이 두세 번 신청했거든요. 전세 보증금 올려 줄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렇게 37년을 일하고 회사를 나오니 손에 쥔 퇴직금이 5000만 원뿐이더라고요.” 퇴직 전 그는 은퇴 후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지 않았다. 막연한 걱정만 하다가 퇴직한 직후에는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민연금 받을 나이는 아직 되지 않았고 퇴직금은 바닥이 보이는 상태였다. 저축한 돈과 남은 퇴직금, 개인연금으로 생활을 꾸려야 했지만 국민연금 없이는 턱없이 부족했다. 생활고와 무료함이 겹치자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가장 자신 있는 것이 강의였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뒤 겸임교수로 10년 넘게 스피치 강의를 한 경험도 있었다. 20년간 FM 라디오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쌓은 노하우가 있어 음악 강의도 할 수 있었다. 음악 강의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선배 PD가 맡던 클래식 강의 4회 중 2회를 사정상 못 하게 되자 강 씨가 대타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처음 오페라를 주제로 대중 강연을 했는데 빔프로젝터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조차 낯설었어요. 야마토카지노 그래도 그 기회로 강연 아이템을 하나 더 확보한 셈이죠.” ● “이력서 넣는 족족 낙방”… 낙심의 나날 스피치와 음악으로 강의 커리큘럼을 짜서 백화。 문화센터 문을 두드렸다. 초기엔 강의 역량을 펼쳐 보일 곳이 백화. 문화센터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피트니스나 어린이 놀이교실, 외국어 강좌가 인기인 문화센터에서 인문 교양 강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어쩌다 강좌가 개설돼도 수강료 중 강사 몫은 적었다. “수강생 10명이 6만 원씩 내면 60만 원인데, 그중 강사에게 오는 건 30만 원 정도였어요.” 그러다 알게 된 곳이 서울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평생학습관이었다. 평생학습관은 백화。 문화센터보다 프로그램이 다양했다. 하지만 평생학습관에서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초까지 수입이 아예 없거나 100만 원 안팎에 머문 달이 이어졌다. “그때는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중장비 자격증이 확실하다는 얘기를 듣고 학원을 알아보기도 했고, 입시 국어가 아니라 듣기 쓰기 읽기 말하기를 아우르는 국어 학원을 차려 볼까 고민도 했어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자격증도 알아봤는데, 그걸 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취업이 안 된다더라고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딴 지인은 취직은 됐는데 매일 파만 썰고 있다고 하고요.” 1년 가까이 수입이 끊긴 시기에 그는 대학 강단에 섰던 겸임교수라는 화려한 이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 잘하는 강의 말고 듣고 싶은 강의 서울의 한 자치구 평생학습관에서 오페라 강연을 하는 모습. 강성곤 씨 제공.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강의의 문을 두드린 끝에 물꼬가 트였다. 전환。은 서울시 산하 재단법인이 운영하는 서울시민대학이었다. 서울시민대학은 시민의 학습권 보장과 사회적 성숙을 목표로 하는 종합교양대학으로 서울 4개 캠퍼스에서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강 씨는 2024년 스피치 강의로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강의 영역은 오페라로 확장됐고, 강의 평가가 좋아 광진 성동 구로 영등포 평생학습관 강의로 이어졌다 소셜그래프게임다운로드 . 왜 그렇게 지원할 때마다 떨어졌는지 원인을 곱씹어 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강의를 밀어붙일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의를 해야 하더군요. 청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높이를 맞추는 게 먼저였어요.” 요즘은 스피치보다 오페라 강연 의뢰가 더 많이 들어온다. 기존 클래식 강의가 고전주의, 낭만주의 같은 사조에 대한 추상적 설명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한 그는 아리아 중심의 커리큘럼을 짜 청중이 곡을 즐길 시간을 풍부하게 확보했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이나 ‘별은 빛나건만’ 같은 아리아는 다들 곡명은 아는데 선율이 매칭 안 되거나 어느 작곡가 작품의 어느 대목인지는 잘 모르시더라고요. 간단한 스토리텔링만 곁들여도 훨씬 청중 친화적인 강의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월 240만 원가량의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강사료를 비롯해 월 400만∼500만 원 수익을 올리며 여유 있는 노년을 지내고 있다. ● 든든한 자산 ‘아웃사이더’ 경험 강 씨는 자신이 KBS에서 크게 주목받는 아나운서는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방송계가 대목을 맞던 시기, 입사 3년 차인 그에게 올림픽 중계는 언감생심이었다. 남자 아나운서들이 기피하던 클래식 FM을 자원해 맡았다. “사무실 전화 응대가 유독 서툴렀던 터라 이를 피하려 라디오 스튜디오로 도망친 셈”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당시 잘나가는 아나운서들은 대개 예능, 교양 프로그램 MC나 보도 프로그램 앵커를 꿈꿨다. 하지만 그는 시사 보도 채널이 아닌 클래식 전문 채널, TV가 아닌 라디오 진행을 맡으며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 1990년대 중후반에는 노조와 아나운서협회 간부까지 맡으면서 주요 프로그램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이후 반강제로 발령받은 곳이 한국어연구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캐스팅이 잘 안 되는 아나운서들이 흔히 가는 곳’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주류로 여겼던 두 경력이 지금은 든든한 자산이다. 교육 담당 시절의 경험은 은퇴 후 강의로, 연구 담당 시절의 경험은 칼럼 쓰기로 이어졌고 18년간의 KBS한국어능력시험 출제와 검수 경력도 큰 자산이 됐다 달팽이 레이싱 게임 . 클래식 FM을 진행하며 쌓은 지식과 노하우 덕에 오페라 분야 강사로 명성도 쌓이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세 번의 위기와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죠. 저도 그만두려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 위기의 순간들을 어떻게든 버텨 낸 제 자신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후배들에게 전하는 네 가지 조언 강 씨는 직장인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우선 현직에 있을 때부터 겸임교수 등으로 대학 강단에 서 보라는 것이다. “재벌 2, 3세가 아닌 이상 우리 인생은 어딘가에 계속 지원하고 도전하는 과정이에요. 이럴 때 이력서 학력란에 석사학위가 있는 게 든든하더라고요.” 두 번째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꼭 써 보라는 것이다. “신변잡기식 에세이 말고 자기 전문성을 담은 책을 써두면 강의를 준비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어요. 책을 안 쓰면 애써 정리한 내용도 결국 잊어버리게 되거든요.” 그다음 꼭 필요한 것이 눈높이 낮추기다. 퇴직 초기에는 재능 기부나 낮은 강사료도 마다하지 않고 서울시 각 구 평생교육원이나 평생학습관 강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지원해 강사 이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잘 활용하라고 귀띔했다. “SNS에는 조용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포스팅을 눈여겨보다가 ‘강의 좀 해달라’고 다이렉트메일(DM)을 보내는 식이죠. 2018년에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서 우리말, 오페라, 영화, 이렇게 세 가지 주제로 글을 올렸더니 반응이 차츰 오기 시작했어요. 기업이나 강의 플랫폼, 음악 동호회뿐만 아니라 경기 이천문화원을 비롯한 전국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연락이 오고요.” 그의 어릴 적 꿈은 교사였다. 고려대 교육학과 출신으로 졸업 후에는 명문 고등학교 교사 자리를 골라서 갈 수 있었음에도 교사의 꿈을 접었다. 당시 취업준비생들에게 최고 인기였던 종합상사에 들어갔다가 KBS 아나운서로 전직해 37년을 일한 뒤, 그는 비로소 강사로 일하고 있다. “어린 시절 꿈 주위를 돌다 제자리로 온 것 같아요.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꿈을 향해 계속 걸어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력서 넣는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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