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대전·충남 시민들이 홍성군청 앞에 모였다. 이번이 세번째인 ‘대전충청 평화발자국’ 행사를 위해 대전과 논산, 보령 등의 시민들이 홍성을 찾았다. 홍주성 안회당.
ⓒ 이재환
"홍주성 물 맛이 너무 좋다"
충남 홍성군에 있는 홍주읍성 안에는 천주교 순교자들이 이 물을 마시고 모진 고문과 매질을 견뎠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내려오는 우물터가 있다. 아직 날이 더워서인지 이날 홍주성 우물터는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12일 오전 대전·충남 시민들이 홍주읍성 안에 있는 홍성군청 앞에 모였다. 이번이 세 번째인 '대전충청 평화발자국'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과 논산, 보령 등의 시민들이 홍성을 찾은 것이다.
홍주읍성에 위치한 홍성군청 일대는 근현대사의 '아픔'을 말없이 품고 있는 곳이다. 과거 홍주(홍성의 옛 이름)성과 그 일대에서는 천주교 순교와 동학농민군 홍주성 전투(1894년 음력 10월 28~29일), 홍주의병 전투(1차 1896년·2차 1906년), 3·1독립만세운동(홍성읍 3월 7일)이 일어났다.
홍성의 아픈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보도연맹 사건 등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다.
홍주성부터 한국전쟁 위령비까지, 역사 현장을 걷다
'평화발자국'의 방문 장소로 홍성이 꼽힌 것도 그 때문이다. 행사를 주최한 논산·대전·보령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시민 40여 명은이날 홍주읍성과 용봉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김좌진 생가와 한용운 생가 등을 차례로 방문하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황금성다운
▲ 12일 오전 대전·충남 시민들이 홍성군청 앞에 모였다. 이번이 세번째인 ‘대전충청 평화발자국’ 행사를 위해 대전과 논산, 보령 등의 시민들이 홍성을 찾았다. 홍주성 우물터.
ⓒ 이재환
유영재 대전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은 "홍성은 천주교 순교와 동학 전투, 3·1운동이 있었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희생자도 많았다. 김좌진 생가와 한용운 생가도 있다"라며 "홍성은 근현대사에서 보듯이 민족정기와 의기가 높았던 지역이다. 역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그 의미를 새기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남북 관계도 경색되어 있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호르무즈) 파병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의 문제가 결코 과거의 문제만이 아닌 오늘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장 해설'은 이번영 전 <홍성신문> 편집국장이 맡았다. 홍성에서 나고 자란 홍성 토박이인 이 전 국장은 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들려줬다.
이 전 국장은 "홍성에서 자랑하는 인물이 여섯 분이 있다. 최영 장군, 만해 한용운, 김좌진 장군, 이응노 화백, 한성준(한국 근현대 춤의 아버지)이다. 이분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그 바탕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이 있었다. 위대한 평민들이다"라고 말했다.
▲ 12일 오전 대전·충남 시민들이 홍성군청 앞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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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번째인 ‘대전충청 평화발자국’ 행사를 위해 대전과 논산, 보령 등의 시민들이 홍성을 찾았다. 시민들이 홍성 용봉산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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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국장에 따르면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90년간 홍주성에서 순교한 순교자는 212명이다. 기록으로 남지 않은 순교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찰과 특무대는 홍성 지역 보도연맹원 100명을 살해했다. 이후 인민군과 국군의 보복이 이어졌다. 인민군에 의해 248명, 국군에 의해 630명의 민간인이 보복 살해됐다.
이날 '발자국' 행사는 홍주성과 홍주 의사총,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 등을 거쳐 김좌진 생가와 한용운 생가로 이어졌다.
김좌진·한용운 생가에서 만난 또 다른 역사
홍성군 갈산면 출신인 김좌진 장군은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북로군정서군을 이끈 인물이다. 이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함께 일본군을 크게 격파했다. 갈산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이번영 전 국장은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란 것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장군은 노비를 해방 시키고, 1907년 호명학교를 세웠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도 높이 평가 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명학교는 이후 갈산공립보통학교(갈산초)가 됐다. 현재 이 자리에는 갈산중·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근대 한국 춤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성준은 김좌진 장군과 같은 홍성군 갈산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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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준의 무덤은 김좌진 생가와 마주 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이웃 결성면에는 한용운 생가가 있다.
시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한용운 선사는 홍성군 결성면 박철마을 출신이다. 그의 생가도 이 마을에 복원되어 있다. 한용운은 1919년 3·1운동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이다.
김좌진, 한성준, 한용운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이번영 전 국장은 이날 김좌진 생가 앞에서 세 사람의 관계를 상상력을 더해 풀어냈다.
"한성준은 1874년에 태어났다. 5년 뒤인 1879년 한용운이 태어났다. 둘 다 청주 한씨이다. 그 후 10년 뒤인 1889년에는 김좌진 장군이 태어났다. 김좌진과 한성준은 같은 마을 사람이다. 한성준이 춤 공연을 할 때 어린 김좌진이 구경을 갔을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김좌진은 옆 동네 살던 한용운 형이 백담사로 보따리 싸서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꾸며서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일종의 허구와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유롭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책으로만 읽었던 역사가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최아무개씨는 "홍주성 우물 맛이 정말 좋았다"라며 "김좌진 장군의 이야기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책으로만 읽고 알았던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역사적 사실들이 좀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자국' 행사는 논산·대전·보령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주최하고 <오마이뉴스> 대전충청이 후원했다.
홍주성 전투(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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